귀국

6월 말에 13년의 일본 생활을 접고 한국에 왔으니, 벌써 반 년 가까운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는데, 그동안 도대체 일본에서 어떻게 살아 왔는지 의아할 정도로 한국에서 즐겁고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 오는 걸 결심한 건 정확히 2024년 1월 3일이었는데, 슬픔과 공허함, 외로움으로부터의 도피가 목적이긴 했으나… 일본에서의 관성적인 삶을 한순간에 때려치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에서의 내 삶이라는 것이 나에게 그리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고 내 본래 자리를 찾아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일본에 미련이 아예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지만, 10년 넘게 살았던 것치고는 생각만큼 별로 아쉽지는 않다. 일본 생활에 통째로 쏟아부은 내 20대가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까. 그게 20대라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일본이어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병원에 너무 늦게 간 탓이었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귀엽고 멋진 것도 많이 보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고 생각했었는데, 신기하게도 일본을 떠나자마자 그 모든 것들이 그리 생각이 나지도 않고, 아쉽지도 않다. 오래 있었기 때문에야말로 더 아쉬울 것도 없이 모든 걸 경험해서 그런 것인지.

운이 좋았다. 한국 구직 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 정말 운 좋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었고, 자리가 있었다. 전에 하던 일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라 내가 정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것도 처음이다보니, 막연한 두려움이 컸다. 다시 한 번 정말 운이 좋게도, 그 모든 것들이 내 성격이나 성향과 너무 잘 맞았고, 나는 지금 꽤나 즐겁게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한국에 오면 하고 싶었던 것들의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채워가는 중이다. 생전 처음 프로야구를 보고, 구단의 팬이 되고, 시합이 있는 날마다 구장에 출석 도장을 찍고. 좋아하던 공연을 보고, 배송비 걱정 없이 한국의 책들을 사고 읽고 독서모임에 오프라인으로 나간다.

사실 무엇보다 내가 해방감 내지 행복감을 느꼈던 건 윤석열의 불법 계엄으로 촉발된 집회 참여였다. 일본에서 참정권을 포함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가 제한된 이방인으로서 살면서, 박근혜 탄핵을 비롯, 한국의 격동하는 시민 사회와 정치적 풍경들을 볼 때마다 그저 부러움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괜히 정치적 활동을 했다가는 뭐라도 빌미 잡혀서 한국으로 하루 한 순간에 추방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이제는 없는 상태로, 집회에 마음 놓고 나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로서는 좋았다. 이런 불안감, 답답함이 나를 이민 사회학과 아카데미아로 (한때) 이끈 것이기도 했었지만.

아쉬운 게 없진 않다. 이젠 재택을 안 하고 매일 출근을 하다보니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건 좋은데, 한편 전처럼 집에 있다가 문득 나가서 사진 찍고 오는 게 여의치가 않네. 그래서 한국 온 이후 사진이 생각보다 별로 없다. 그만큼 바쁘고 충실하게 살았다는 걸로 치기로.